보이티우스 《철학의 위안》
《철학의 위안》은 보이티우스가 감옥에 갇혀 사형집행을 기다리면서 집필한 저서이다. 고통과 절망에 사로잡힌 그에게는 어떠한 삶의 희망도 남아있지 않았다. 운명은 이전에 그가 누렸던 모든 자유와 부귀를 빼앗고 비참한 현실을 선사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보이티우스는 한 여인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느꼈다. 이 여인의 키는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며, 옷단 맨 위에는 그리스 문자 세타가, 옷단 맨 아래에는 그리스 문자 파이가, 중간에는 사다리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여인의 손에는 몇 권의 책과 왕권을 상징하는 홀이 들려있었다. 이 여인은 누구인가? 바로 철학의 화신이다. 그리스 문자 파이는 실천철학을, 세타는 사변철학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 여인은 보이티우스의 절망에 이성이라는 처방을 제시했다. '철학'이야말로 보이티우스가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정신적 위안이기 때문이다.
철학
보이티우스의 사상은 신플라톤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다. 특히 그는 철학적 관조를 통해 현실의 왜곡된 세계에서 벗어나 진정한 실재를 경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여기서 보이티우스는 진리의 빛과 대조적인 덧없는 외관의 세계라는 은유를 자주 사용한다. 이는 플라톤이 <국가>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사용한 이데아와 그림자의 개념을 상징한다.
운명과 행복
운명은 변덕스럽다. 운명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리는 사람들도 한 순간에 최악의 자리로 떨어뜨릴 수 있다. 이것이 운명의 본성이다. 그러나 진정한 철학자는 이러한 운명에 좌우되지 않는다. 철학은 보이티우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운명이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순간은 운명이 불운의 모습을 띨 때이다. 행운은 인간을 기만할 뿐이다. 그 순간이 진정한 행복이고,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허황된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명이 가면을 벗고 스스로 본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는 깨닫는다. 역경은 우리가 행복이라고 믿는 부와 명예, 쾌락, 행복이 얼마다 덧없는 것인지, 그리고 과연 누가 우리의 진정한 친구인지를 가르쳐준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 참된 행복은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야 한다. 즉, 진정한 행복은 부와 명예처럼 외부적 영향에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철학이 바로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악행과 보상
보이티우스는 정의가 부존재하는 세상을 한탄한다. 악한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는 반면 선하고 고결한 사람들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가? 그러나 철학은 진정한 보상을 받는 사람은 바로 선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고결한 사람들은 선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인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티우스에 따르면 오히려 악한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정과 치료가 필요한 대상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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