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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요약

by veritas79 2021. 5. 3.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당신은 자유롭다. 고로 선택하라' 이 말은 실존주의의 본질을 함축하고 있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공개 강연을 열고 그곳에서 버려짐, 불안, 절망이라는 세 가지 개념을 중심주제로 다루었으며, 훗날 같은 제목의 저서를 집필했다. 이 책은 몇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선택과 책임에 관한 진지한 통찰을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은 사르트르가 나중에 아주 난해한 책인 <존재와 무>를 집필하는 초석이 되기도 했다. 사르트르가 제시한 핵심 주제는 인간이 무엇을 하려 하는지 그리고 어떠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지를 결정하는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실존주의


실존주의자들은 저마다 다양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모든 실존주의자들이 공유하는 한 가지 신념은 인간의 경우에는 '존재가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선제적 구조가 없다는 것을 뜻하며, 우리가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인간의 본성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인간은 스스로 되고자 하는 바를 선택한다. 이 점에서 우리의 본질이 의존하는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우선 먼저 존재하고, 행동을 통해 스스로 원하는 바를 이루어나간다. '선택'을 통해 인간은 각자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할지 결정한다. 우리는 우리가 되고자 하는 바를 완전히 자유롭게 결정하며 동시에 이러한 자유에는 피할 수 없는 책임이 동반된다. 반면 인간이 아닌 인공적인 사물은 그것의 기능과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규정된다. 예를 들어, 주머니칼을 생각해보자. 만약 그것이 물건을 자르지 못하거나 접는 칼날이 없다면 그것은 더이상 주머니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더이상 주머니칼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으며 본래의 목적을 상싱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주머니칼의 본질은 그것이 탄생하기 전에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정신 속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에게는 선험적으로 결정된 목적성이 없고, 인간의 본질을 사전에 결정하는 누군가의 정신도 없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선택할 인간의 자유를 강조했고 이 점이 바로 모든 실존주의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다.


휴머니즘


사르트르 강연의 주요 목적은 그가 주창한 실존주의가 휴머니즘의 한 형태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휴머니즘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으므로 사르트르가 이 용어를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에 우선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휴머니즘은 인간을 만물의 중심으로 이해하는 이론이다. 그래서 휴머니즘은 인간적 가치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사르트르가 실존주의를 휴머니즘이라고 선언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한 것이다. 특히 삶의 전반에서 인간의 선택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르트르의 주장은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를 창조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선언은 인간의 정신과 잠재력을 비관적으로 바라본 비평가들을 전면 반박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버려짐


사르트르가 이해한 버려짐은 어떠한 의미인가? 사르트르가 말하는 버려짐은 구체적으로 신으로부터의 버려짐을 의미한다. 이것은 형이상학적 실재로서의 신이 어떠한 시점까지 존재하다가 갑자기 소멸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의 유명한 말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19세기 후반에 인간은 더이상 신에 대한 믿음을 고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사르트르는 '버려짐'이라는 은유적인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인간의 도덕적 선택을 담보할 만한 신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느끼는 상실감을 강조한다. 버려짐에 따른 주된 결과는 이전까지 존재했던 도덕의 객관적 원천이 이제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 인간의 도덕적 선택은 순전히 주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 말이 인간의 모든 임의적인 선택이 용인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인간의 선택에도 일정한 제약이 가해질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한편 사르트르는 창조주의 부재에 따른 의미심장한 영향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해 자유롭게 선택을 하는 사람은 불안의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불안


사르트르는 의지의 자유를 믿는다. 그는 인간의 선택에 관한 결정론적 시각에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선택의 여지없이 타율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기만에 불과하며, 사르트르는 이것을 두고 자신의 진정한 자유를 부정하는 그릇된 믿음이라 비판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유롭다. 그리고 자유는 인간 존재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인간은 단지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자유를 선고받았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즉,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는 일정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안은 우리가 혼자라는 사실의 깨달음이기도 하다. 우리가 처한 환경은 누구의 탓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상태를 책임져야 한다. 우리는 부모나, 고향,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도 없다.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을 부정하는 것이 바로 그릇된 믿음이다. 나아가 사르트르는 인간이 특정한 행동을 선택할 때 필연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리는 입법자'로서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로 선택한다면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도 유익함을 줄 수 있는 관습을 고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자로서의 인간은 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신의 선택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것이다. 따라서 자유를 선고받은 인간은 필연적으로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절망


인간은 필연적으로 절망을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절망은 세계의 특성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다. 나는 무엇이든지 원할 수 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반드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기를 바랄 수는 있지만, 사고를 당해 손가락 몇 개가 부러진다면 전문적인 연주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을 충족시키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 다른 사건들, 다른 상황들 때문에 내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로 자신을 무위의 영역에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우리에게 더 적극적인 행동과 참여를 촉구한다. 실제로 인간은 자신이 해왔던 행동들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까지 당신이 해왔던 행동들의 총체이다.


사르트르의 제자


사르트르는 이 책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을 기술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사르트르의 제자 한 명은 심각한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그 제자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첫 번째는 프랑스에서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영국의 자유 프랑스군에 합류해 프랑스의 해방을 위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제자는 아들로서의 도리와 천륜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프랑스의 해방을 위해 싸울 것인지 딜레마에 놓여 있었다. 사르트르는 우선 기존의 기독교적 도덕률이나 칸트적 도덕률이 이 제자에게 도움을 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기독교적 가르침은 실질적인 해답을 제공하지 못하며, 칸트의 도덕률에 따를 경우에는 어머니와 프랑스군 중 하나는 반드시 수단으로 삼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때 사르트르의 제자는 버려짐의 의미를 경험한다. 그는 미리 결정된 고정적인 가치체계가 없는 세계에서 어쩔 수 없이 아주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여기에는 간단한 해답이란 없으며, 오로지 그는 스스로 선택해야 할 뿐이다. 사르트르는 곤경에 처해있는 제자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한다. '너는 자유롭다. 고로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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